자식에게 있어서 아버지는 복잡한 감정의 대상이다. 딸은 아무래도 덜 하겠지만, 특히 아들에게는 '좋은 아버지이거나 나쁜 아버지' 둘 중의 하나일 경우가 많다. 가능성 면에서 본다면 '나쁜 아버지'일 가능성이 훨씬 크지 않을까 싶다. 요즘 세대는 많이 달라졌지만, 적어도 예전에는 그랬다. 그러나, 임영웅의 '아버지'는 아버지를 따뜻한 사랑의 눈길로 노래하고 있다.
하얀 머리 뽑아 달라며
한 개 백 원이라던
그 시절 다 지나가고
이젠 흰 눈만 남았네
우리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의 아버지 세대는 먹고사는 게 정말 팍팍했다. 늘 끼니 걱정을 해야 했다. 제대로 된 직장이나 직업을 갖기가 쉽지 않았고, 직장에서는 힘들게 일하면서도 부당한 대우를 받기 일쑤였다. 그래도 우리 아버지들은 아내와 자식들을 위해 묵묵히 견뎌냈다. 소주 한 잔에 신세한탄하고 잊으려 할지언정, 밖에서 상처받고 자존심 상한 일을 굳이 집안에까지 끌고 들어오려 하지 않았다. 안으로 삭이고 내색하지 않는 게 남자요, 아버지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노심초사하며 지내다 보면, 젊음도 빨리 지나간다. 30대 중후반이면 '새치'가 슬금슬금 보이기 시작하고, 애들이 좀 컸다 싶으면 더 이상 뽑는 것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을 만큼 흰머리가 갑자기 늘어난다. 아이들도 본능적으로 안다. 흰머리 한 올에 100원씩 받고 열심히 찾아 뽑을 때는 신났지만, 흰머리가 '대세'가 되어 버린 상황에서는 그걸 뽑고 100원씩 받는 게 더 이상 즐거움이 아니라는 것을...
그렇게도 힘이 드냐며
나를 위로하시다
어느새 잠들어버린
주름만 남은 내 아버지
자식이 나이가 들어 스물이 되고, 서른이 되고, 결혼해서 부모가 되어도 아버지에게 있어서 자식은 늘 '애'이다. 아버지와 자식의 나이는 절대 뒤바뀔 일이 없고, 아이가 커간다고 해서 아버지와 자식의 나이 차이가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늘 '어린' 자식이 걱정이다. 몸이 아프더라도 참는다. 굳이 자식에게 말해서 신경쓰게 만들고 싶지 않다. 그리고, 자식이 좀 힘들겠다 싶으면 금방 눈치를 챈다. 자기가 처자식을 먹여살리며 힘들게 겪어온 이력이 있기 때문에 누구보다 잘 아는 것이다. 그래서 안쓰럽다. 하지만, 이미 나이가 들고 힘이 빠졌으니 위로를 하더라도 어느새 잠이 들기 마련이다.
당신 있으면 견딜 것 같아
오래오래 날 지키며
그냥 곁에만 있어 주세요
어린애 같아 보여도
아프다 말도 못 하는 사람
이제는 내가 지켜줄게
사랑하는 내 아버지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는 해가 지남에 따라 점점 180도 쪽으로 변해가는 '시간의 함수'이다. 자식이 어릴 때에는 아버지가 절대적인 강자의 위치에 있지만, 사춘기를 지나면서부터는 반항과 도전의 대상으로 바뀌게 된다. 자식이 머리가 커서 독립할 시기가 되면 아버지의 위상은 이미 정점을 지나고 일방적인 지시나 강요는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 시집/장가를 간 자식이 손자/손녀를 안겨주는 때가 되면 어린 손주를 자주 안아보기 위해서라도 자식들에게 잘 보여야 한다.
젊었을 때의 아버지는 처자식에게 사랑한다는 감정 표현도 하지 못하고, 좋을 때는 오히려 퉁명스러운 말로 대신하기 일쑤였지만, 나이가 들면서 더 이상 그렇게 하면 '씨알이 안먹힌다'는 것을 알고 말과 행동도 적당히 컨트롤할 수 있게 된다. 그런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어렸을 때는 그렇게 밉고 '불가사의한 존재'이던 아버지가 자연스럽게 점차 이해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고, 연민을 느끼게 되는 존재가 되어 간다. 그리고, 마침내는 뭔가 해주지 않고 그냥 '곁에 있기만 해도' 안심이 되고 위로가 되어 주는 고마운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상황이 오래 지속되기 어려운 내재적인 '한계'가 있다. 내가 좀 더 성숙해지고 아버지를 있는 그대로 온전히 끌어안을 수 있을 정도가 됐다 싶으면, 아버지는 이미 '살아갈 날보다는 살아온 날이 훨씬 많은' 연약하고 어린 존재가 되어 있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그리고 많은 경우에는 경제적으로도 자식에게 의지해야 하는 것이다.
그럴 때 아버지는 슬플까?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자식이 아버지를 이해하고 공감하고 사랑해 주는 한, 자기가 나이 들어 자식에 기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보람되고 자랑스럽고 고마운 일이라 느낄 것이다.
[임영웅의 아버지 음악 및 가사 링크 : https://www.youtube.com/watch?v=An7ZnTEz40s]
임영웅의 '아버지'는 자식이 아버지와의 지난 날을 추억하면서 사랑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 가사에는 드러나 있지 않지만, 오늘의 이 시점에 이르기까지 적지 않은 우여곡절과 여러가지 사연이 있었을 수도 있다. 대부분의 경우에, 아버지와 자식 간의 사랑은 항상 일정하거나 시간에 정비례해서 우상향하는 1차 함수 그래프 모양 보다는, 우하향 하다가 나중에 가서야 상향하는 식의 2차 함수, 또는 굴곡이 심한 3차 함수 같은 그래프 모양을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 중간과정이야 어떻든간에 나이든 아버지의 모습을 자식이 사랑의 마음으로 바라보고 지켜줄 수 있다면, 결국 '해피엔딩'이고 더 없이 기쁜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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