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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랫말로 읽는 삶

르세라핌의 Unforgiven - 가사 감상

by Writing1004 2023. 6. 1.

르세라핌의 Unforgiven은 자신이 빌런(악당)이고, 용서받지 못할 길을 걸어갈 것이라고 당당하게 커밍아웃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예전 같았으면 누가 봐도 악당인 인간조차 나는 악당이 아니다라고 극구 변명을 했을 텐데, 르세라핌은 구차한 설명도 없이 그냥 악당임을 자처하는 것이다. 우리로 인해 새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선언까지 한다.  

 

Unforgiven I'm a villain I'm a

Unforgiven 난 그 길을 걸어

Unforgiven I'm a villain I'm a

새 시대로 기억될 unforgiven

 

과도기는 항상 혼란스럽다. 이미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었을 지는 모르겠지만, ‘악당이 나서서 세상을 바꾸겠다는 것에 대해 반감을 갖는 사람들은 도처에 널려 있다. 하지만, 그런 눈치나 분위기에 주눅이 들면 빌런노릇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문제아라든가 골칫거리라는 말에 신경이 쓰인다면 잠자코 세상 흘러가는 데 몸을 맡기고 있어야 한다. 옆에서 불편해 하고 싫은 표정을 지어도 뭐가 어때서? 나보고 입 닥치고 있으라고?라는 말로 쿨하게 무시하고 넘어가야만 이 거대한 세상에 맞서 싸울 수 있는 것이다.  

 

Yeah what you want?

불편함이 깃든 face, wanna shut me up

사냥감을 거듭해 찾는 워리어S

너의 game에 난 문제아 such a freak 골칫거리

 

어느 시대이든, 이런 전사는 환영의 대상이 아니다. 정말로 세상을 바꾸는 빌런이 될지 아직은 알 수 없으니 쌍수를 들고 반길 수 없을 뿐더러, 저렇게 나대는 것부터가 기분 나쁘다. 도발적이고 도전적인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누구인가? 르세라핌이 아니던가? 우리 사전에 대물림이란 없다. 기성세대의 가치관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찾아 뒤집을 것이고, 룰이 있다면 깨부술 것이다. 그렇게 해서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시대가 되고 있음을 세상에 각인시킬 것이다. 물론, 주변에 널려 있는 적들이 하나 같이 백기 투항해 올 것으로 기대할 수는 없다. 치열하게 싸워야 하고, 또 그 싸움에서 이겨 살아남아야만 정당성을 얻을 수 있다. 그러니, 피 흘리는 것 정도는 당연히 예상해야 하고, 또 감수해야 한다.

 

그래도 그동안 달라진 것이 있다면, 과거에는 무조건 지는 싸움이던 것이 지금은 해 볼만한 싸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독하게 마음먹고 죽자고 달려들면 오히려 승산 있는 싸움을 만들어 갈 수 있다.    

 

Let me tell you 'bout LE SSERAFIM

내가 제일 싫은 건 낡은 대물림

어둠 속 불을 켜 마치 rebellion

We gonna kick it break it rules gon' give up

 

Unforgiven yes I was bleeding

힘없이 늘 져야만 했던 싸움 but I ride

바란 적도 없어 용서 따위는

난 금기를 겨눠 watch me now

Now now now

 

하지만, 아무리 르세라핌이라 하더라도 달랑 몇 명만으로 이 세상을 상대해서 새 시대를 열어 나가는, 그런 일을 해 내기는 어렵다. 그러면, 점잖은 표현으로 다른 사람들과 '전략적 제휴'를 해야 하고,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솔깃한 말로 '잘 꼬셔야' 한다. “함께 좋은 세상 만들어 보자, 기성 세대에 대항해서 세상을 바꾸는 용서받을 수 없는 여자들이 되어 보자, 그렇게 해서 새 세상을 열면 우리도 호랑이 가죽처럼 이름을 남길 수 있다.”  

 

그런 신념으로 무장되어 있다면 사실 두려워할 것은 별로 없다. 세상 사는 게 뭐 대단한 것이 있겠는가? 살아가면서 해 보고 싶은 것 해 보고, 도전해 보고 싶은 것에 도전하는 것일 뿐이고, 잘못 되었다 해도 세상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실패했을 때에는 챙길 것이 없어 그 값은 대부분 제로(0)일 것이고 가끔 마이너스로 끝날 경우도 있기는 하겠지만, 성공했을 때에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치는 무한대로 열려 있기 때문에 도전의 기대값은 분명 투입된 시간과 돈과 노력의 본전보다는 훨씬 클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내 신념대로 한번 화끈하게 붙어볼 만하다. 신데렐라처럼 왕자님에게 간택되어야만 하는, 그런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삶은 나와는 맞지 않는다.

 

나랑 저 너머 같이 가자 my unforgiven girls

나랑 선 넘어 같이 가자 my unforgiven boys

Unforgiven unforgiven unforgiven

한계 위로 남겨지는 우리 이름

나랑 저 너머 같이 가자 my unforgiven girls

 

U-unforgiven-given-given

style livin' livin' livin'

내 방식 아주 원 없이 또 한국말론 아주 “철없이”

Get started let's get started

미래 그 앞에 새겨둬 나의 story

신념이 죄면 난 villain,

I'm not that cinderella type of a girl

 

예전에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모범답안이 있었다. 남자라면 부모님 말씀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한다. 졸업하면서 고시에라도 붙으면 그야말로 대박이지만, 그렇게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좋은 직장에 취직만 해도 모범적이며 성공적인 자식이요, 일등 신랑감이었다. 공부도 잘 하지 못하면서 여기 저기 쓸 데 없는일에 기웃거리기나 하고 다니면 다리 밑에서 주워 온 남의 자식이 되기 일쑤였다.

 

여자라면 모름지기 조신해야 하고, 학교 졸업해 시집 가서는 시부모·남편 잘 모시며 애들 훌륭하게 키우는 며느리·아내·어머니가 되어야 했다. 여자 아이들에게 장래 꿈이 뭐냐고 물으면 현모양처라는 대답이 심심치 않게 나올 만큼 여성상에 대한 이미지는 확고했다.

 

요즈음에도 엄친아’, ‘엄친딸은 엄연히 존재한다. 엄친아’, ‘엄친딸이 부모에 의지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자주적이며 독립적인 존재라면 부러움이 대상이 되겠다. 하지만, 그냥 말 잘 듣는 모범생일 뿐이라면 헬리콥터 맘밑에서 기도 펴지 못하는 마마보이, 마마걸이 되어 너무 일찍 시들어 버린 청춘으로 끝나기 십상이다.

 

지난 몇 십 년 동안 사람들은 너무나 강력한 학습효과를 경험했기 때문에 말 잘 듣고, 공부 잘하고, 시집·장가 잘 가는 식의 성공 방정식은 이제 별로 설득력이 없다. 자식 새끼 공부 좀 한다고 해서 열심히 집 팔고 논 팔아 학비 대준 집은 부모도 노년에 돈 없어 고생하고 자식도 평생 월급쟁이 신세에 불과하지만, 자식이 공부에 취미가 없어 평생 논밭이나 매던 사람들은 어느 날 갑자기 땅부자로 변신하여 떵떵거리며 산다.

 

노래나 부르고 춤이나 추거나, 그림이나 그리고 배우나 하던 자식들도 커서 딴따라 밖에 안되겠다거나, “마누라와 자식 새끼 밥 벌어 먹이기도 힘들겠다”며 늘 걱정거리였지만, 그들이 커서 싸이도 되고 BTS, 블랙핑크에 김태희, 전지현도 되고 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수십 만, 수백 만 팬들을 몰고 다니며 부와 명예를 모두 끌어 안으니 짧은 시간 안에 천지가 개벽해도 너무나 개벽한 것이다.

 

이제는 기존의 사회질서나 가치관, 요구되는 역할에 순응하기 보다는, 오히려 삐딱하게 시비 걸고 새롭게 도전해 보는 악당들에게 더 성공 가능성이 많아졌고, 그러한 사람들이 새 세상을 만들어 가는 그런 시대가 되었다. 르세라핌의 ‘Unforgiven’은 우리가 그런 시대에 살고 있음을 잊지 말라고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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