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노란봉투법'이라고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이 국회 환경노동위에서 야당 단독으로 통과되었다. 이로 인해 노란봉투법을 둘러싼 대립이 격해지고 있고, 대통령실에서는 일찍부터 거부권 행사를 예고하고 있다. 무슨 문제가 있길래 노동조합법 본문 96개 조항 가운데 단 2개 조항을 고친다는 개정안이 이렇게 큰 이슈가 되고 있을까?
언론보도에서는 "노조의 파업으로 인한 손실에 대해 사측의 무분별한 손해배상 소송 제기를 제한하는 것이 골자"라고 간단히 소개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설명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이 2개 조항이 개정되면 노동조합법의 전체 구조와 사용자/기업과 노조/근로자 간의 힘의 균형이 근본적으로 바뀌게 되어 "노사관계의 혁명적 전환"이라고 할만한 엄청난 변화가 불가피하다.
특히, "폭력이나 파괴로 인하여 발생한 직접손해"에 대해서도 손해배상 청구를 하지 못하도록 하거나 그 범위를 대폭 제한하고 있어서 사용자 내지 기업의 사유재산권을 침해하는 내용이 되고, 따라서 '위헌법률'의 문제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 "고의/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민법 제750조)"는 사법체계의 근본원칙, 즉 불법행위 책임도 배제하는 결과가 된다. 교섭 상대방이 불명확하여 교섭에 응하지 않을 경우 불의에 사법처리될 가능성이 있는 등 형사법상의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되는 부분까지 있다.
1. 노란봉투법의 내용
'노란봉투법'은 지난 2014년 쌍용자동차 파업 참여 근로자들에 대해 법원이 47억원의 손해배상 판결을 내리자, 한 시민이 노란봉투에 4만7천원을 담아 언론사에 보내고 모금 캠페인을 제안한 데서 유래한다. '노란봉투'가 노조에 대한 지원의 상징이 된 셈이다.
우선, 노동조합법을 큰 틀에서 이해하자면 (1) 사용자와 (2) 근로자(노동조합)라는 양 당사자의 (3) 단체교섭 (4) 단체행동, 그리고 (5) 적법한 단체행동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 제한 등을 정하고 있는 법률이라고 볼 수 있다. 중재와 조정, 벌칙 등에 대한 규정도 꽤 있지만, 위의 5개 부분과 연계된 부수적인 사항이라고 할 수 있다.
노란봉투법은 2~3조의 단 2개 조항 개정에 대한 것이지만, 노동조합법 전체에 대해 직접적이고도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개정안의 요지는 아래와 같다. 법률안의 문안이 길기 때문에 핵심 내용으로 요약하였고, 전체 원문이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서는 맨 하단에 파일을 첨부해 놓았다. 아래에서 특히 중요한 내용은 빨간 색으로 하였지만, 사실 나머지 내용도 모두 중요하다.
구 분 | 현 행 | 개정안 |
근로자의 범위 (제2조 1항) |
임금/급료 및 이에 준하는 수입으로 생활하는 자 | (좌측과 동일) |
(항목 추가) 다른 사람의 업무를 위해 노무를 제공하고 그 대가를 받아 생활하는 사람 | ||
(추가) 기타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으로서 보호 필요성이 있다고 정하는 사람 | ||
사용자의 범위 (제2조 2항) |
사업주, 경영담당자, 사업주를 위해 행동하는 자 | (항목 추가)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아래의 경우는 사용자로 간주 (1) 근로자의 근로조건이나 수행업무에 대해 사실상의 영향력 또는 지배력을 행사하는 자 (2) 노동조합에 대해 상대방으로서의 지위를 인정할 수 있는 자 |
노동쟁의의 개념 (제2조 5호) |
노동조건의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로 인해 발생한 분쟁상태. 주장의 불일치란 더 이상 자주적 교섭에 의한 합의의 여지가 없는 경우를 말함. | (내용 변경) 근로조건 및 노동관계 당사자 사이의 관계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로 발생한 분쟁상태. |
손해배상 청구의 제한 (제3조) |
이 법에 의한 단체교섭/쟁의행위로 인해 손해를 입은 경우 노조 또는 근로자에 대해 배상 청구 불가 | (현행은 1항으로 하고, 끝에 아래 단서 내용 추가) 쟁의행위 등으로 인해 손해를 입은 경우 배상 청구 불가. 단, 폭력이나 파괴로 인해 발생한 직접손해는 제외 |
<항목 추가> | (2항) 상기의 단서가 노조에 의해 계획된 경우에는 노조 외에 노조임원/조합원/근로자에 손해배상 청구 불가 | |
<항목 추가> | (3항) 신원보증인은 쟁의행위 등으로 인해 발생한 손해에 대해 배상책임 없음. | |
<항목 추가> | (4항) 근로자/노조의 위법행위로 인해 직접 발생한 것이 아닌 손해는 배상청구 대상 손해에 포함되지 않음. | |
손해배상액 제한 (제3조의 2) |
<조항 신설> | 3조1항 단서의 경우(=폭력이나 파괴로 인한 직접손해의 경우)에도 노동조합의 존립이 불가능하게 되는 경우 손해배상 청구 불가 |
조합원 수, 조합비, 노조 재정규모 등을 고려하여 노조에 대한 손해배상액의 상한은 별도로 정함. | ||
손해배상액 감면 청구 (제3조의 3) |
<조항 신설> | 손해배상 의무자(=노조/근로자)는 법원에 손해배상액의 감면 청구 가능 |
법원은 감면 청구가 있을 경우, 다음 각 호의 사정을 고려하여 감면 가능 1. 쟁의행위의 원인과 경위 2. 사용자 피해 확대의 원인 3. 사용자의 피해 확대 방지 노력 4. 배상 의무자의 재정 상태 5. 손해의 발생 및 확대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친 정도 6. 기타 손해의 공평한 부담을 위해 고려해야 할 사정 |
2. 노란봉투법 핵심쟁점과 사유
개정안에 찬성하고 있는 야당 및 노조 단체의 주장은 비교적 간단하다. 요약하자면, (1) 노동조합법에 따른 단체교섭/단체행동(파업) 등의 허용범위와 적용대상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2) 사측이 손해배상 청구를 노조 압박의 수단으로 남용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사용자/기업 및 정부 측에서 심각한 문제점이라고 거론하고 있는 내용을 정리해 보면 아래와 같다. (반대하는 이유가 많은데, 주요 사항 위주로 정리)
항 목 | 주요 반대 사유 |
사용자 범위 확대 | (1) 하청업체 노조가 원청업체를 상대로 단체교섭 요구 및 파업이 가능해 지며, 따라서 원청업체는 수 많은 하청업체 노조들과 단체교섭 및 타결 의무를 부담 (* 삼성전자가 수 많은 하청업체 노조와 일일이 단체교섭을 해야 하고, 파업 등에 대비해야 하는 상황을 가정하면 됨. 사실상, 1년 내내 노사교섭 불가피 및 상시적인 파업 예상) (2) 하청업체 노조로 하여금 먼저 원청회사를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하고 파업 또는 소송 등을 장기적으로 끌고 가도록 유발 (원청회사가 교섭에 응하지 않으면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음) (3) 복수의 노조가 있을 경우의 '교섭창구 단일화'의 대상이 누구인지가 불명확해 지는 점 등 노동조합법 내의 다른 조항과 충돌 발생 (4) 하청업체 노조 파업시 원청회사가 대체 근로자를 투입할 수 있는지의 여부 불명확 |
노동쟁의의 개념 변경 | (1) 노동쟁의의 범위가 "노동조건의 결정" 뿐만 아니라 "노동관계 당사자 사이의 관계"로 변경될 경우, 모든 노사 관계가 노동쟁의의 대상이 되는 결과 초래 (2) 현재는 '미래의' 노동조건 결정에 관한 분쟁이 쟁의의 대상이나, '현재의' 노동조건 결정, 나아가 '경영상의 판단'과 같이 노동조건 결정과 관계없는 사항까지도 노동쟁의 대상에 포함 (3) 노동쟁의는 노사가 교섭을 먼저 하고 "더 이상 자주적 교섭에 의한 합의의 여지가 없는 경우에" 하는 최후 수단으로서의 의미가 있으나, 노조가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노동쟁의를 할 수 있게 됨으로써 노동쟁의 폭증 불가피 |
폭력이나 파괴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제한 | (1) "폭력이나 파괴로 인해 발생한 직접손해"는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한 것처럼 문안을 새로 넣었지만, (a) 노조임원/조합원/근로자에 대해서는 폭력이나 파괴로 인해 발생한 손해에 대해서도 배상 청구를 하지 못하도록 명시하고, (b) 폭력/파괴로 인하여 발생한 '간접손해'는 손해의 범위에서 아예 배제하였으며, (c) 신원보증인에 대해서도 책임을 물을 수 없도록 하는 등의 방어장치를 둠으로써 사실상 손해배상 청구를 무력화 (2) 헌법상의 사유재산권 보장에 위반되며, 불법행위에 대해 광범위한 면죄부를 줌으로써 노조와 근로자들의 폭력이나 파괴 행위를 법률이 조장 |
손해배상액의 제한 | (1) "폭력이나 파괴로 인해 발생한 직접손해"는 (노조임원/조합원/근로자에게는 불가하고) 노조에 대해서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것처럼 되어 있지만, 이 경우에도 "노조의 존립이 불가능하게 되는 경우에는 손해배상 청구 불가"하도록 명시하여 사실상 폭력/파괴로 인한 직접손해에 대해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 구조로 구성 (* 노조에 대해 사용자 내지 기업이 손해배상을 청구하려면 폭력/파괴가 노조가 계획적으로 한 점이라는 사실과, 손해배상을 하더라도 노조가 존립 가능하다는 점을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손해배상을 받기가 매우 어렵다.) (2) 노조가 손해배상을 해야 하는 경우라도, 조합원 수나 재정규모 등에 따라 손해배상의 상한선을 두도록 함으로써 이중 삼중의 방어장치 설정 |
손해배상액 감면 청구 | (1) 폭력이나 파괴로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하는 경우에도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책임을 줄이고 회피할 수 있는 근거 규정 제공 (2) 다수의 행위자/책임자가 발생한 손해에 대해 연대책임을 지지 않고 각자 책임을 쪼개어 부담할 수 있도록 허용 |
3. 노란봉투법, 어떻게 볼 것인가?
노란봉투법에 대해서는 여야, 또는 좌우 등의 정치적 입장을 떠나서 심각하게 생각해 볼 점들이 있다.
우선, 노란봉투법을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이 법을 '합법파업 보장법'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주장은 사실과 다르고 설득력이 없다. 왜냐하면, 현행 노동조합법에서도 합법적인 파업은 보장이 되고 있는데, 이번에 노란봉투법에서 손해배상 책임을 묻지 못하도록 막는 대상은 '합법적인 파업과 그로 인한 결과'가 아니라 '폭력이나 파괴로 인해 발생한 직접손해"이며, 이는 불법행위에 대해 거의 무제한적인 면죄부를 주려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노란봉투법은 노조와 근로자들의 파업 및 폭력/파괴 행위를 정당화시키는 반면에, 사용자 내지 기업측의 대응수단 강화는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노사간의 힘의 균형이 노조 쪽으로 급속히 기울 수 밖에 없다. 노란봉투법이 확정되면 단기적으로 노조의 힘이 강해지고 주장내용을 관철시키기가 쉬워지겠지만, 장기적으로도 과연 근로자들에게 유리할 것인지에 대하서는 매우 회의적이다. 국민연금의 경우도 마찬가지이지만, 현재의 세대에 인심을 쓰면 그 부담이 고스란히 미래 세대, 즉 우리들의 자식들에게 전가되기 때문이다. 노조가 '거의 모든 이슈에 대해', '언제든지', '책임에 대한 아무런 부담감 없이' '정당한 쟁의행위 외에 폭력/파괴행위까지' 할 수 있고 그 대상도 소속회사 뿐만 아니라 타 주요 기업들이 포함되기 때문에 대기업들은 국내에서의 투자 확대와 사업규모 확장을 피할 수밖에 없다. 이는 일자리 감소와 노동조건의 악화로 이어질 것이고, 크게 보면 우리나라의 산업구조 자체를 열악한 방향으로 몰고가는 결과가 될 우려가 크다.
한 가지 더 언급한다면, 노란봉투법이 정말로 '합법적인 파업을 보장하는 것으로서 노조를 위하고 근로자를 위한 것'이라면 문재인 정부 때에 통과를 시켰어야만 한다. 이 법안의 발의자를 보면 강훈식/기동민/김의겸 의원 등 더불어민주당 46명, 이은주/심상정 의원 등 정의당 6명,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 1명, 김홍걸/윤미향 등 무소속 의원 3명 등 총 56명의 의원이 포함되어 있다. 지금의 야당이 국회에서 절대 다수의 의석과 함께 행정부까지 장악하고 있을 때에는 문제가 심각하다고 하여 통과시키지 않았던 법안인데, 정권이 바뀌고 나서 새삼스럽게 '근로자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입법화 하겠다고 하니 어떻게 보더라도 정치적인 목적 이외에는 그 사유를 찾기 어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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