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혼자 사는 집에 4개월간이나 무단침입을 하고 스토킹에 음란행위까지 한 사람이 1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의 선고를 받았다. 범인은 오피스텔 분양사무소의 직원이고, 분양 당시 가지고 있었던 카드키를 빼돌려 범행을 저질렀다고 하는데, 이런 정도의 심각한 범죄에 대해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이 합당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집행유예는 유예기간 중에 별다른 범죄행위를 하지 않고 지나가면 형을 마친 것으로 인정해 주는 제도이다. 실형이라고는 하지만, 본인이 조심만 하면 사실상 처벌 없이 지나가는 것이다. 이번 사건의 경우, 여성이 없는 틈을 타서 범인이 자기가 가진 열쇠를 이용, 9차례나 마음대로 집에 드나들었다가 발각되었다. 집안에서 음란행위도 했다고 한다. 결과만 놓고 보면 폭행이나 절도 등의 다른 추가 범죄로 이어진 것은 아니지만, 내용 면에서는 매우 질이 나쁘고 위험성이 높은 범죄이다.
판사도 판결문에서 "피해자가 스토킹과 주거침입 범죄로 심각한 정신적 피해를 입었고, 범인에 대한 처벌을 원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하지만, "범인이 피해자를 위해 일부 금액을 형사공탁했고, 별다른 범죄 전력이 없으며 재범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다"는 이유로 집행유예가 적정하다는 것이다. 피해자가 가졌을 엄청난 공포와 앞으로도 혹시 유사한 일을 당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 "만일 범인이 나중에 해코지라도 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끝없는 두려움 등을 생각하면 이런 판단이 정말 맞는 것인지 회의적이다. 집행유예의 사유로 든 이유들도 (i) 형사공탁은 어차피 피해자에게 해 주어야 하는 손해배상을 미리 맡겨 놓은 것일 뿐이고, (ii) 재범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은 반성문을 썼거나 재판정에서 그러한 말을 했다는 것일텐데 과연 어느 정도나 진정성이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실제로는 형량을 낮추기 위해 변호사 등과 상의해서 의례적으로 써내는 것이 반성문이다.
우리나라는 전세계에서도 범죄율이 매우 낮고 범죄 검거율도 높은 반면에, 법원의 범죄에 대한 처벌은 지나치게 관용주의적이다. 강도나 살인, 폭행 등의 개인적인 범죄는 물론이고, 회사 공금에 대한 횡령이나 배임, 주가 조작 등의 경제사범에 대한 처벌도 선진국에 비해 형량이 매우 낮다. 이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사회적으로 자주 논의되고 있는 '촉법소년' 이슈도 결국 "처벌 예외 적용과 관대한 처벌이 오히려 범죄를 유발하는 요인이 되고 있지 않은가" 하는 반성에 다름 아니다.
형사처벌이 '처벌' 그 자체에 목적이 있지 않고 '예방'과 '사회복귀'를 목표로 한다고는 하지만, 지난 해 9월 발생한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의 경우에서도 보면, 범인의 범죄 위험성이 명확하여 구속영장이 청구된 사안에서도 "도주와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신병을 자유롭게 풀어 주고, "범행을 인정하고 범행재발 방지를 약속했다"고 해서 아무런 추가 조치를 취하지 않음으로서 그로 인해 피해자가 죽임을 당하는 사태에까지 이른 것이다. 이런 일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는데도 담당 판사가 판단 잘못을 인정했다든가 유족에게 사과했다든가 하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우리나라 사법부는 처벌 내지 형량을 지나치게 조심하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된다. 기사내용 외에 추가적인 사정이 개입되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리 보더라도 혼자사는 여성의 집에 수시로 무단침입하면서 스토킹 행위를 한 범인에게 별로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 않는 이유를 들면서 집행유예를 판결하는 것은 우리나라 법원의 관대화 경향을 상징하는 것 같아 적잖이 우려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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